2006년 11월 말 정도로 기억이 난다. 캐나다 벤쿠버에 도착한 첫날은 눈이 그렇게 많이 왔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벤쿠버는 겨울에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겨울에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아 다른 캐나다의 도시들과 달리 따뜻한 편이다. 하지만 겨울 내내 비가 많이 내린다.
우리 세 식구가 도착한 그날은……, 그렇게 눈이 많이도 내렸었다.
지갑속에는 캐나다 달라 300불, 이것이 지금 캐나다 벤쿠버에 떨어져서 가지고 있는 전 재산 이었다. 아니다……., 아직 이자를 주고 있는 빚도 한국에 남아 있으니, 아직은 빚이 더 많은 마이너스 상황 이었다.
사실, 그 당시에 목사님 이었던 장인, 장모님이 벤쿠버에 잠시 선교 활동으로 계시던 때였고, 우리가 벤쿠버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소개를 해 주셔서 와이프는 와서 얼마 되지 않아 한의 대학교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난 그동안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여서 인지, 벤쿠버에 오자마자 몸이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아팠다. 와이프가 일하는 한의대의 병원에서 침도 맞고, 치료를 받으며 한 몇개월 정도를 흔히 말하는 백수로 살았다…… ㅋ 장인, 장모님과 와이프까지 3사람이 일을 해서 벌어온 돈으로 난 그야말로 ‘무위도식’ 하며 지내야 했다.
캐나다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치료를 받으며 친해진 이박사님(한의대 교수겸 한의사) 그리고 이박사님이 소개해서 알게된 이박사님 환자이자 절친이신 장관장님(이분도 무술을 하셔서 여기저기 많이 아프시다….ㅋ, 골프 티칭프로 이기도 하시고) 이렇게 3명이서 자주 어울렸다.
정말 고맙고 좋은신 분들이다. 내가 너무 없었고, 돈 한푼 벌지 못하던……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그시절에 밥과 술도 사주시고, 골프도 가르쳐 주시고…….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장인, 장모님 그리고 와이프도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는 보였지만, 그동안 너무 지쳐서인지 좀 쉬면서 캐나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고….., 몸도 마음도 나아지면서 난 서서히 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난 이 캐나다에서 다시 비지니스를 시작하고 싶었다. 호주에서 한 것 처럼만 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마냥 놀고 먹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무슨 일이든지 하면서 캐나다에 대해서 좀 알아야 했고, 하나하나 준비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일을 찾던중……., 장관장님이 키친 케비넷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소개를 해 주셨다.
시간당 10불…..ㅋ 예전에 잘 나갔으면 뭐하나, 현실은 10불 짜리 인데……,
캐비넷을 만드는 공장이라 그런지 영어를 잘 못 해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각자의 맡은 공정별로 캐비넷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라 많은 영어는 필요치 않았다.
난 영어가 좀 편한 편이라, 다른 외국인들과도 잘 지내고, 한국분들과도 점점 친해졌다. 다들 한국에서 한가닥씩 하고 오신 분들이 많았다. 대기업 임원으로, 군장성으로……,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나 시간당 10불로 시작하는 캐비넷 공장이다. 나름 한국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살다가 이민을 오고, 영어도 잘 안 되고, 그냥 마냥 놀기도 너무 무료하여 여기에서 일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 공장은 재미있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임금이 시간당 10불에서 출발하여 분기별로 25센트가 올라 일년 근무하면 정확히 1불이 오른다. 그래서 13불 받는 사람은 3년, 17불 받는 사람은 7년 근무한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15불 50이면 5년 6개월에서 9개월 사이 인것이다. 이 룰은 예외없이 모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었다.
한달 반쯤 지났나……,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는데, 사장님이 부르신다.
처음에 일하기 시작할때 잠시 인사를 드리고, 평상시는 공장내 맡은 파트에서 단순 노동만 하면 되어 거의 뵐일이 없었다. 이공장은 정확히 15분씩 2번, 점심 전과 후로 쉬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 30분……, 정말 규칙적이었다. 난 한번도 직장을 다녀보지 않아서 이렇게 규칙적으로 해본적이 없었지만, 나름 편했다. 아무것도 신경 않쓰고 주워진 일만 잘하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시간 좀 있지?” 아참 여기 사장님은 아주 오래전에 이민 오신 한국분 이시다.
내가 시간이 있다고 하자….., 날 데리고 어딜 같이 가자고 하신다. 가시면서 ‘지금부터 업무시간이 지나 일하는 시간은 급여를 1.5배를 준다’는 설명을 하셨다. 난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회사의 모든것이 사장님 성격과 같이 정확하다. 1.5배면 15불…..ㅎㅎ 이건 5년차나 받는 급여다. 한달 반동안 근무하면서 어쩌다 출고 일정이 바쁜것들은 경력이 좀 있는 베테랑들이 남아서 잔업을 하는것을 가끔 본 적은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야근 하는일이 흔하진 않았다.
사장님과 같이 간곳은 이미 케비넷 납품과 인스톨까지 끝난 곳이었다. 이곳은 작업이 다 끝났지만, 미흡한 부분들이 있어서 에프터 서비스 차원에서 온 것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어떤 것들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결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며 할 수 있겠는지를 물어 보셨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하였고, 그렇게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공장에서 그냥 캐비넷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 만들어진 캐비넷을 현장에 배달해서, 인스톨까지 하는 회사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장님은 지금 비자는 어떤 상태인지, 언제 캐나다에 왔는지 등등……, 그렇게 나에 대해 몇가지를 물으시고, 그래도 공장에서는 내가 좀 젊은 편이고 영어도 되고 하니, 공장 보다는 이런 외부의 일들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며, 그렇게 되면 급여도 올려 주시고 교통비까지 따로 주시겠다고 하시는 거다. 난 당연히 ‘잘 할 수 있다.’ 고 지켜 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난 큰 신축 콘도 단지에, 우리 회사에서 만들고 설치까지 끝난 키친 케비넷의 인스펙션 전에 실리콘 작업, 케비넷 도어 다는작업 등등 그리고 인스펙션이 끝나고 나면 체크 리스트에 나와 있는 수정 작업들을 하였고, 때때로 공사현장에서 현장 담당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급여는 10불에서 11.50 그리고 13.50으로…. 몇개월만에 빠르게 오르고 있었고, 평일 근무시간 이후라든지, 주말에 하는일도 많아졌다. 덕분에 1.5배의 급여를 받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 1~2달 공장에서 일 할때 보다도 어쩔때는 2배가 넘는 급여를 받았다. 집에 페이첵(pay cheque 봉급으로 받는 수표)을 들고 가는 날이면 그렇게 뿌듯 할 수가 없었다.
예전 호주 유학중 어려운 시절에 알바는 많이 해 보았지만, 거의 내 사업을 주로 해온 터라 직장생활을 해 본적도 없었고, 월급을 받아 집에 갖다 준적이 없어서 난 좀 새로웠다.
한국으로 말하면 이런 대규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여러 건축 공정들을 볼 수 있는 것도 그저 좋았다. 이런 저런 기술자들과도 알게되고, 공사 진행과 자재들을 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맛보는 것은, 이렇게 규칙적으로 빠르게 오르는 급여를 받는것도 좋았지만, 그 보다 몇 배의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고 한참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때쯤, 난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았다. 안지는 얼마 되진 않았지만, 가끔 만나 술도 한잔씩 하면서 나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형님이 새로 구상중인 사업이 있는데 쉐어를 주고 급여도 줄테니 같이 해 보지 않겠냐고……, 고민이 되었다. 난 지금 하고 있는일에서 새로운 경험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고, 영주권만 나오면 내 사업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몇 일의 고민 끝에 일단 그 형과 같이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도 내 일을 시작 하기전 좋은 경험이 되리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니던 회사 사장님께 이러 이러한 이유로 그만 둬야겠다고 2주의 노티스를 드렸는데……., ‘더 같이 일하면 않되겠냐’고 하신다….ㅎㅎ 이런 말씀에 감사를 드렸고, 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정을 받으며 일 한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캐나다에 와서, 다시 시작한 첫번째 일은 6개월도 않되어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더 하신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같이 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치 않다.” “오랜만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 일찍 헤어지는것 같아 섭섭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며 건강하게 잘 살라고 하시는데 정말 눈물이 날뻔 했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같이 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치 않다”
이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